증발

광주 역사의 상징적인 장소 중 하나인 (옛) 전남도청 앞 분수대는 목격자라고 불리며 
오랜 세월과 역사를 목격한 채 지나간 시간을 간직하고 있다. 
같은 자리에서 오롯이 묵묵하게 버티는 분수대를 보고 있자면 닦이지 않은 원석처럼 탐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영상 속 인물은 이 분수대를 갈고 닦아 더욱 빛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늦은 밤, 그 조각을 훔쳐 달아난다. 그 조각을 조심스럽게 얼리고 녹이고 끓여본다.
 분수대 조각이 힘을 다해버려서 증발해 버릴 때까지, 만족스러울 때까지. 
작은 조각들을 조금씩 계속 훔치다 보면 모든 물이 마르고 이야기가 퇴색되어 어느새 분수대의 앙상한 골격이 드러날 것이다. 
골격이 드러난 분수대는 더 이상 분수대로서 자리할 순 없겠지만 분수대가 목격한 순간들의 이야기와 시간은 남아있을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분수대에 새겨진 이야기들은 변화하게 될 주변의 풍경들과 달리 온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증발, 2022, Single channel video, color, sound, 5min 6s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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