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용 개인전 《 관찰자 : 끓어오르는 것들 》
2020. 12. 12(Sat) - 2021. 12. 27 (Sun)
소아르 미술관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화보로 4439-1 )
:가라앉은 상실을 헤아리는 방법
글 ㅣ 이소영
손쉽게 습득할 수 있게 된 타인의 정보는 맛있다. 빠르게 입에 욱여넣고 자리를 뜰 수 있는 패스트푸드처럼 맛이 좋고 뒤처리가 용이하다. 비트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더 맛나고 관능적인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현대의 유랑자들은 자폐적인 스크롤링을 거듭한다. 동시대의 풍요는 곧 결핍이라 했던가. 상품이라는 이름으로 단장한 이미지의 무제한적 증식은 이를 마주 선 우리의 선택을 고민하게 한다. 선택을 고민하게 만든다는 것은 얼핏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을 푸짐하게 차려놓고 나의 기호에 따라 섭취하기만 하면 된다는 대가 없는 은혜를 베푸는 듯 하지만, 무엇을 대가로 지불하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덕용 작가는 편리라는 섭취 후에 남겨진 찌꺼기들을 치밀하게 더듬는 작가다. <Garbologist>에서 누군가가 버린 쓰레기 봉지를 파헤쳤다면, <Litter Maker>에서는 쓰레기를 버린 누군가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작품이다. 작가는 누군가가 게워낸 여물들을 반추하면서, 마치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하나하나 음미하며 기록한다. 타인을 알고 싶다는 애정 어린 손짓으로도, 남의 사생활을 관음하는 비사회적인 행동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스크린을 더듬는 누군가의 손놀림과 무엇이 크게 다를까. 정직한 쓰레기는 야속하게도 말하지 않는다. 그래도 최대한, 남겨진 타인의 체취를 더듬거리며 찌꺼기의 주인공을 가늠해본다. 그러나 쓰레기의 주인공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쓰레기를 차곡차곡 눌러담는 사람. 그중 어떤 것은 운명을 유예시킬 의미가 있을까, 한 번 더 들여다보기도 한다. 달콤하게 입안을 적셨던 것들은 나의 신체와 분리되어 세상에 내뱉어진 순간 역겨운 토사물이 되고, 버린다는 행위는 그것들을 다시 바라보는 것이기에 고독하다. 나는 나를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타인을 손쉽게 파악하고자 하는 열망이 불러온 소통의 간소화는 취향을 배설하고 다시 그것을 파헤치는 굴레 안에서 반복된다. 시간의 흐름으로 따진다면 쓰레기를 버린 후 그것을 주워 파헤치는 것이 순서에 맞겠지만, 사실 그 인과관계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타자를 섭취하면서 그의 세계를 무너뜨리고 다시 내가 먹히면서 나 또한 무너진다는 오래된 진리를 떠올려본다. <Review> 연작은 그렇게 얇아진 인간의 감정층들이 왜 그리도 쉽게 요동칠 수밖에 없는지 보여준다. 무언가 새로운 물건을 소개할 때 초점을 옮기기 위해 손바닥을 뒤쪽으로 펴는 것은 언박싱 영상의 상징적인 제스처가 되었다. 결국 조그마한 화면 속에 얼마나 사람들의 눈을 붙들어놓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된 현대의 생산 메커니즘은, 끔찍한 사건과 사고마저도 자신의 구조 안으로 포섭하였다. 자본과 결탁된 이미지들은 인간 개체 하나하나의 정체성과 행적을 부검하듯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도그마적 집착을 만들어냈고, 그만큼 사건의 심각성은 화면 속 비트로 축소되고 스펙터클로 소비된다. 진실과 본질로 위장한 불꽃은 너무나도 매혹적이어서 손을 대면 뜨거움에 소스라칠 것이나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어루만짐은 그 시도를 멈추지 못할 것이다. 정덕용 작가는 동시대의 새로운 감각 아래로 침잠된 잉여들을 돌아보는 것을 기꺼이 한다. 온전히 손에 쥐어낼 순 없어도 그 안에 묻어져 쉬쉬하던 이야기들을 비추는 것을, 편리를 위해 지불한 대가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고개를 돌려보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잠긴 얼굴
글 : 신 헤아림
가지런히 잠긴 얼굴을 일으켜 집으로 데리고 온다.
굳은 눈과 입술은 경계가 불분명하다.
누가 그 눈으로 어둠이 스민 빈 창문을 짚어낼 수 있을까?
누가 그 입으로 .사라진 말을 다시 발음할 수 있을까?
맞닿은 모든 경계가 안에서 잠겨있다.
닫힌 공간은 닫힌 태도만으로도 비밀을 만들어 낸다.
사인(死因)을 모르는 장례식처럼.
나는 잠긴 얼굴에 얇은 틈을 내고 안을 들여다본다.
당신이 버린 비밀을 뒤적거리며 당신에 대해 생각해.
당신의 필체, 당신의 말버릇, 당신의 취향, 당신의 슬픔, 당신의 얼굴, 당신의 목소리,
당신이 모르는 당신까지도.
틈 사이로 드넓은 목초지가 보인다.
바람이 불고 나는 땀이 조금 식는다.
동시에 어떤 기분이 들었는데 그 기분을 설명할 순 없지만 눈물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비밀은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으며 증식한다.
비밀은 비밀을 빌려 당신을 착각하게 한다.
나는 당신을 만나도 당신을 못 알아 볼 것이다.
당신이 버린 당신의 얼굴 속에 사는 나.
당신이 버린 얼굴의 주인이다.
당신은 담배를 피우며 푸른 목초지의 기원을, 잠긴 얼굴 위에 쪼그려 앉아있는 바람을 떠올리는 사람.
당신만 모르는 당신의 사실이 하나 더 늘었다.
비밀은 버리는 게 아니라 숨기는 것이다. 라고 쓴다.
눈동자를 가르는 목동의 손이 분주하다. 목동은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진짜 자신의 얼굴이라 믿는데,
정작 본인은 얼굴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이다.
고백의 가능성
글 : 신 헤아림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은 은밀한 비밀에 대하여 고백함)
너에게 하는 고백은 항상
…으로 이어지는 가능성에서 위험해진다
면도칼을 쥔 시체의 알리바이는…
다음 줄에 쓰여질 예언의 오류는…
오전 열두 시의 방문 틈 사이엔…
나는…
일기장을 펼치면
찢어진 반쪽짜리 결말이 쏟아졌다
누군가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손가락은 거짓이라 적는다
언젠가 나는 빈 공터를 혼자 유령처럼 산책한 적이 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던 것 같은데
너는 알고 있는 듯했다
하마터면 모르는 너에게 다가가
반갑게 손을 흔들 뻔했다
나는 나를 위장하기 위해 지문을 벗겨낸다
고백은 지문의 결을 따라 흐르고
눅눅한 먼지처럼
방바닥을 떠돌다가
욕조 안에 뿌옇게 퍼졌다
나는 이제 방아쇠를 당기는 기분으로 가벼워진다
수천 번 교배해도 섞이지 않는
길고양이의 우울한 털색처럼
매번 나의 비밀은
웃고 있는 입에서
악수하는 손끝에서
빨지 않은 속옷에서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아무도 모르게 쓰여진다
나의 은밀한 비밀을 더듬어 보는 새벽
고백의 언저리 끝에서
너에게 들키지 않게
창밖으로 손을 슬쩍 뻗어 보는 것이다
결말을 쓰고 지웠던 일기장을…
하나씩 뚝뚝 잘라 쥐에게 먹여주던 나의 손톱을…
나는…
우리가 비슷한 종류의 비밀을 나눌 가능성에 위험해지고
…
주인 없는 비밀들은 너무 일찍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