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용 개인전 《녹색 언덕, 그늘진 곳엔 볕이 들지 않아서》
2022. 10. 31 - 2022. 11. 13 (Sun)
아크 갤러리 ( 광주광역시 동구 문화전당로 26번길 10-8)
: 어둡고 짙은 그림자 속에서 녹색 섬광을 찾는다
글ㅣ정수진
윈도우 XP의 기본 바탕화면을 기억하는가? 마이크로소프트가 2001년 10월 25일 처음 게재했던 파란하늘 아래 녹색 언덕이 있는 이미지 말이다. 이 상징적인 녹색 언덕은 사진인지 그림인지 혹은 그래픽인지 많은 이들의 의문을 자아내기도 했다. 또, 사진 작가 찰스 오리어(Charles O'Rear)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소노마 카운티(Sonoma County)에 위치한 포도농장을 개인적으로 촬영한 Bliss (더 없는 행복)라는 제목의 사진 작업임이 밝혀진 뒤에도, 촬영 장소와 관련하여 2019년 인근 대형산불과 연관되어 전부 타버렸다는 가짜 뉴스가 보도되거나 사진이미지와는 다른 실제 장소의 최근 모습으로 진위 논란이 일고, 실제 장소의 정확한 위치, 근처의 와인 산업, 저작권료 등과 관련된 무수한 정보들과 함께 계속 회자되고 있다.
정덕용은 그 동안 이렇게 스크린 속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녹색 언덕 그 이면에 주목해왔다.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의 양가적 면모 혹은 그와 관련된 윤리적 문제에 대해 주로 다뤄온 작가는 이번 개인전 《녹색 언덕 그늘진 곳엔 볕이 들지 않아서》에서 그 동안 작업 속에서 보여줬던 비평적 시선을 스크린 밖으로 확장시킨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네 점의 신작을 통해 (실제) 햇볕이 (적어도 현재 기술로는) 들 일 없는 온라인 세상 속 녹색 언덕 이면의 랜선 간의 연결이 아닌, 볕 드는 세상 속 세 개의 녹색 언덕—무덤, 군대, 그리고 거미의 배—을 거닐며 사람과 사람간의 연결 나아가 삶에 대해 고찰한다.
첫 번째 언덕은 무덤이다. <그늘진 곳엔 볕이 들지 않아서>에는 공중에 정박된 무덤과 바닥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등장한다. 이는 마치 죽음을 맞이한 뒤에도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떠도는 영혼과 그를 달래는 제사를 연상시킨다. 산 자들은 죽은 자들을 붙잡기 위해 노동, 음식, 돈 등을 소진해가며 장례를 치르고 제사를 지낸다.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는 죽음과 제사의 공통점이 “가치를 버림으로써 잃어버린 가치를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속되던 삶이 끝나면서 그리고 유용한 것을 제물로 줌으로서, 삶과 그 제물의 가치가 희미하게나마 회복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언덕, 군대는 제사와 비슷하게 “오직 순간에만 관심 있는 성취”를 요구한다. 사회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던 구성원들은 국가를 위해 갑작스럽게 약 2년간의 ‘순간의 성취’를 이뤄야 하는 대상이 되고, 그들의 노동은 전쟁이라는 목표를 위해 소모된다. 작가는 <벌레의 시선은 밖을 향한다>에서 이러한 군 시절의 본인을 벌레로 묘사한다.
철조망 밖을 바라보며 울부짖던 벌레들은 마지막 언덕인 거미의 배로 이어진다. 벌레는 거미줄에 포획되어 죽고, 죽은 벌레는 거미의 배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 인간만의 것으로 여겨지는 장례의 대상이 된다. 바타유는 인간이 자신의 육체를 동물과 구별 지으며 동물을 사물로 자연스럽게 정의하지만, 사실 인간과 사물의 세계는 긴밀하게 연결되어있으며 죽음을 바로 그 증거로서 제시한다. 예를 들어, 인간은 동물을 죽여서 마음대로 주물럭거리는 행위는 동물이 애초에 살아있었을 때부터 인간에게 사물로 간주되었던 것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육체를 동물의 몸처럼 죽이고 자르고 익히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죽음을 멀리하는 인간도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사물의 세계를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작가는 바타유가 얘기했던 이러한 깊은 연결성을 입증하듯, 역으로, 장례의 대상이 결코 될 수 없던 벌레를 인간의 세계로 초대한다. 즉, 장례를 치러 준다. 그리고 이 장례를 위해 살아있는 거미의 유용한 식량 그리고 작가의 노동이 바쳐진다. 결국, 우리 삶은 무덤에서 무덤까지 여러 관계 속에서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소모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죽음에서 시작하여, 장례, 군대 등으로 이어지는 녹색 언덕은 현실의 삶 그 자체이며, 작가는 그 언덕의 그늘진 곳에 시선을 고정한 채 녹색 섬광을 찾는다. 녹색섬광은 해가 질 때 1초 정도의 아주 찰나의 시간 동안 해의 윗부분이 초록색으로 보이는,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광학현상이다. 작가는 녹색 언덕의 볕이 들지 않는 곳에서 삶을 비관적으로 관조한다기 보다는, 녹색섬광과도 같은 삶과 죽음이 겹쳐지는 그 찰나의 순간, 그 깊은 의미의 연결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정덕용은 이번 개인전을 통해 자신 혹은 타인의 그림자로 인해 볕이 들지 못하는 그늘진 곳, 즉 희생, 속박과 같은 관계의 어두운 면에서부터 더 깊은 의미의 연결을 탐구하며 삶에 대해 고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