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용 개인전 《 문득 》
2021. 09. 25(Sat) - 2021. 10. 04 (Mon)
기억의집 ( 전라남도 순천시 호남길 45 )
: 바라보고 그렇게 떠오른다. 문득.
글 ㅣ이철
정덕용의 작가적 관찰력은 날카롭고 또한 동시에 집요하다. 그의 관찰대상은 주로 미디어 매체를 통해 무수히 생산되고 빠르게 유통되는 정보와 그것의 진위여부나 윤리의식에 대한 인식 없이 무분별하게 소비하는 사용자의 태도까지 이르고 있다. 가짜뉴스, 악성댓글, 루머확산 등 디지털 매체의 발달이 야기한 사회적 현상들은 오늘날 현대인들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기술 발전이 가속화되며 이제는 실재와 비(匪) 실재의 경계가 점차 흐려지는 현상까지 쉽사리 목격할 수 있다. 갖가지 부정성이 도래한 시대, 어쩌면 정덕용 작가의 관찰력은 시대의 흐름이 만들어낸 소산물이라 할 수도 있겠다. 이 전시는 모든 것이 거침없는 속도로 흘러가는 세상에서 문득 작가의 시선을 붙들었던 것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출발한다.
인간은 태초부터 삶과 죽음이라는 이중성을 가진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끊임없이 완전함을 갈망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욕망은 대표적으로 SNS와 같은 디지털 가상공간에서 쉽게 또 다른 욕망을 낳기도 한다. 욕망을 과시하는 일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스크린 속 업로드된 이미지를 본질이라 믿거나, 이것에 쉽게 현혹되는 모습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이번 전시의 신작 시리즈 <눈먼 이들>은 작가가 설정한 가상 세계의 주인공인 봉제 인형의 모습을 통해 현실사회의 여러 단면을 담고 있다. 봉제 인형들은 어긋난 욕망에 의해 서로의 모습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고 일종의 역할을 부여하며 놀이한다. 그러나 작가의 시나리오 속 역할놀이는 마냥 즐거운 놀이로 끝나지 않는다. 타인의 손으로 아름답게 꾸며지는 이 놀이의 끝에는 자신의 진짜 모습이라 의심치 않았던 가공된 이미지와 함께 실재했던 본질마저 잃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의 인간 본질에 대한 탐구와 이를 발화하는 시각언어는 ‘벽(Wall)’을 소재로 삼는다. 빠른 속도로 신축과 철거가 반복되는 사회에서 작가는 굳건하고 견고하게 보였던 벽마저 외력에 의해, 당혹스러울 정도로 손쉽게 성형되는 모습에 주목했다. 전시장에 위태로이 세워진 벽 위를 까맣게 덮어가는 개미 떼는 벽을 갉아 먹고 조각낸다. 본질은 이렇듯 대중에 의해 쉽게 은폐되고 그 의미마저 변질되곤 한다. 사정없이 조각난 벽과 그 위에 붙어 있는 필름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이름 모를 이의 일상은 마치 관객에게 관음증적 시선을 유도하는 듯하다. 작가는 필름 사이사이 빈틈을 두어 보는 이에게 무한한 개입과 선택지를 의도적으로 부여하고 있다. 이미지의 위치를 바꾸고 그 중간을 삭제하는 이 과정은 어떻게 진실의 은닉과 조작이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간접적 경험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경험의 제공자인 작가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최초의 이미지에 담긴 정보의 왜곡과 그를 주도하는 타자들을 어디선가 관찰하고 있을지 모른다.